오소파는 영남의 義城郡에서 1888년 慶令 吳時善의 딸로 태어났다. 나이 열네 살에 서울로 올라와 名士들과 사귀어 놀았으며 '詩를 잘 한다'는 칭송을 들을 정도로 당시의 시문학계에 놀라운 존재였다. 소파는 태어나면서부터 총명했다. 아홉 살에 私塾에 입학하여 천자문을 배웠는데 며칠이 아니되어 모두 외었으며, 음을 붙이고 그 뜻을 풀이함에 있어 하나를 들으면 열을 깨우쳤다. 사숙의 스승이 감탄해 마지 않았으며, 이것을 옛날 중국 漢나라의 班固와 蔡邕(채옹)에 비유하였다. 또 글씨를 익히게 했는데, 글자가 단정했으며, 시를 짓는 법도 가르쳤는데 시운이 淸絶하였다. 이듬해 여름 영흥군 및 의응의 문예경기장(속칭 백일장)에서 장원을 하였다. 이때 고을 원이 칭찬하고 선비들이 감탄하였다. 이때부터 원근에서 신동으로 부렸다.
14세 때 아버지가 공금 횡령죄로 체포되자 죄를 용서해 줄 것을 청하기 위해 도성으로 달려갔는데, 마침 도성에서 詩會가 있어 즉석에서 시를 지었다. 사람들이 모두 놀라고 감탄해서 "효성은 濟榮(제영)이요, 시는 蘭雪이다"라고 칭하였다. 이때부터 이름이 널리 알려져 외국 사람에 이르기까지도 소문을 듣고 효성을 칭찬하였다. 아버지가 이를 기뻐하여 이름을 '덕원'에서 '효원'으로 고쳤다.
나이 20세가 되자 아버지가 시집을 보내려 했으나 듣지 않았다. 여성의 지식 계발이 급하다는 것을 목적으로 이등박문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고 동경으로 건너가 義損金을 모았다. 1년후 동경에서 돌아와 新明女學校를 설립하고 여성을 교육하였다. 그후 新明, 崇信, 攻玉 등의 여학교에서 교편생활을 하였다.
시집 한 권이 있는데 5언 절구, 7언 절구, 7언 율시 등을 합해서 수백 수가 된다. 작품으로는 〈事濟後作〉, 〈哭輓尹婦人〉, 〈詠菊〉 〈5절〉 2首), 〈九歲入學後十日月始作〉, 〈和寒呈雲袁克文〉, 〈初入申新報社雅會〉, 〈爲明新女學校創立事〉, 〈入敎受洗禮〉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