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14대 선조(宣祖)의 비. 연흥부원군(延興府院君) 김제남(金悌南)의 딸로 태어나 1602년 18세의 나이로 50세인 조선 선조의 계비가 되어, 1606년 영창대군(永昌大君)을 낳았다. 선조가 죽자 광해군이 즉위하였고 아들 영창대군과 친정 아버지 김제남은 죽임을 당했다. 인목대비는 서궁에 유폐되어 지내다가 인조반정(仁祖反正)이후 복위되어 대왕대비가 되었다. 글씨에도 뛰어나 금강사 유점사에 친필인 보문경(普門經) 일부가 전한다. 능은 목릉(穆陵)으로 경기도 양주에 있다.
인조반정 직후 선조의 후궁 정빈(靜嬪)에게 한글편지 〈인빈애 ?오신 글월〉을 써 보냈는데 다른 한글 편지와는 달리 상당히 긴 분량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작가의 술회문과 함께 계축일기(癸丑日記)의 저본이 될 가능성이 있다. 인조반정 이후 유일하게 살아남은 친정 조카 김천석(金天錫)에게 보낸 한글 편지도 남아 있다. 한시로는서궁에 있을 때 지은 칠언절구 재서궁자조(在西宮自嘲)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