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 아버지는 의금부도사를 지낸 김순희(金淳喜)이다. 4살 때 친구를 따라 문 밖에 나갔다가 부모에게 꾸중을 들은 뒤로는 문밖 출입을 하지 않는 등 엄한 가정교육을 받았다. 15세에 이현춘(李顯春)과 결혼하였는데 2년 후 남편이 죽었다. 시부모를 극진히 모시고 친정 어머니의 상까지 치른고 남편 사후 20년 만에 자결하였다. 효와 열을 함께 이룬 청한당을 기리기 위해 1907년 예조에서 열려정려(烈女旌閭)를 내렸다.
김씨는 평소 글을 배워 문장을 잘지으면서도"여자가 아무리 경사에 밝아도 부도(婦道)에 어두우면 장차 남자도 여자도 아니게 될 터이니 어디에 쓰겠느냐?"면서 평소 집안 일을 아랫사람들에게 맡기지 않았다. 김씨는 수많은 한시와 문장을 지었으나 현재 전하는 것은 오언절구 춘우신접(春雨新蝶), 칠언절구 과청석동(過靑石洞) 등 한시 33수와 용재론(用財論), 성가설(成家說) 등 2편의 문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