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조판서 이지억(李之億)의 둘째 딸로 태어나 서애(西涯) 유성룡(柳成龍)의 8세손인 사춘(師春: 1741-1814)와 결혼하여 경북 안동지방에 살면서 3남 1녀를 두고 79세까지 유복하게 살았다.
작가가 58세 때인 1794년에 가사 〈쌍벽가(雙璧歌)〉를, 66세 때인 1802년에 가사 〈부여노정기〉를 지었다. 아들의 성공을 지켜보는 어머니의 뿌듯한 심정과 모성이 돋보이는 〈쌍벽가(雙璧歌)〉는 아들 태좌(台佐)와 종형 유상조(柳相祚)가 나란히 과거에 급제하자 기뻐하며 지은 것인데 쌍벽이란 이들 두 종형제를 두개의 구슬로 일컬은 것이다. 또한 〈부여노정기〉는 1800년 3월 아들 태좌가 부여 현감으로 부임할 때 작가 내외가 부여까지 동행하면서 느낀 감회와 여정을, 그로부터 2년 여가 지난 후 아들이 내직으로 옮기게 된 뒤에 그려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