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도 송화(松禾)에서 관노로 태어났으며 18세기 중후반에 기생으로 활동하였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16세 때부터 창을 배워 당대 최고의 명창으로 이름이 높았다. 특히 작가의 나이 20대 후반이던 1760년대 전반에는, 당시 벼슬에서 물러나 음악에 심취하여 지내던 이정보(李鼎輔:1693-1766)의 후원을 받으며 전국에 명창으로 이름을 떨쳤다. 말년에는 자신을 후원하던 심용(沈鏞, 1711-1788)에게 의탁하여 파주(坡州)에서 지내다가 그가 죽은 뒤에도 그곳에서 여생을 보냈다.
조선후기 야담집 {해동야서}, {청구야담(靑邱野談)} 등에 〈추기임로설고사(秋妓臨老說故事)〉라는 제목으로 실린 한문단편에는 추월(秋月)이라는 공주(公州)의 기생의 회고담 속에 작가가 금객(琴客) 김철석(金哲石), 가객(歌客) 이세춘(李世春), 기생 매월(梅月) 등과 어울려 반주와 함께 잡가(雜歌) 등의 노래를 즐긴 내용이 나타나기도 한다.
백발을 소재로 하여 무상한 인생 가운데 특히 젊은 시절은 빨리 지나가 버린다는 안타까움을 그려낸 시조 〈청춘은〉 1수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