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16대 인조(仁祖)의 비. 영돈녕부사(領敦寧府事) 한원부원군(漢原府院君) 조창원(趙昌遠)의 딸로 1638년 왕비로 책봉되어 인조의 계비가 되었다. 11년 후 1649년 인조가 죽고 효종(孝宗)이 즉위하자 대비가 되어 1651년 자의(慈懿)의 존호(尊號)를 받았고, 1661년 공신(恭愼)의 존호가 더해졌고 이후 휘헌(徽獻), 강인(康仁)의 존호가 더해졌다. 소생을 남기지는 못했고 능은 휘릉(徽陵)으로 경기도 양주에 있다.
인조의 계비로서 며느리인 효종(孝宗)의 비보다 나이가 적었기 때문에 자연히 손녀인 공주들과 친밀하게 지내 공주들이 하가(下嫁:공주가 민간인에게 시집감)한 뒤에 한글 편지를 주고받았다. 현존하는 것으로는 숙명공주(淑明公主)에게 쓴 편지 두 편이 〈숙명신한첩(淑明宸翰帖)〉에, 숙휘공주(淑徽公主)에게 쓴 편지 두 편이 〈숙휘신한첩(淑徽宸翰帖)〉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