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취인불명>(2001)
김기덕 감독의 <수취인불명>(2001)은 피해자가 가해하는 복수의 비극을 다루고 있습니다. 프로이트식으로 해석 가능한 가해와 피해의 코드를 김기덕 감독은 다양하게 변주하여 영화에서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애증이라는 이중적 의미를 지닌 단어처럼 가해와 피해의 이중적 의미가 강조됩니다.
<수취인불명>은 미군 캠프가 있는 시골 마을에 사는 ‘은옥’(반민정)과 ‘지흠’(김영민)과 ‘창국’(양동근)이라는 세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은옥에게 가해자는 실수로 판자로 만든 총으로 은옥의 한쪽 눈을 백태로 만든 은옥의 오빠와 눈을 고쳐준 대가로 은옥의 몸을 빼앗은 미군 제임스입니다. 소극적인 성격인 지흠의 가해자는 사랑하는 은옥을 강간한 동네 불량배와 자신에게서 은옥을 빼앗아간 미군 제임스입니다. 창국의 가해자는 도움을 준다는 이유로 창국을 학대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개장수 개눈(조재현)입니다.
<수취인 불명>에서는 서사가 진행될수록 피해자였던 은옥과 지흠과 창국이 복수를 하는 가해자로 변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장지문에 구멍을 뚫고 은옥의 방을 엿보는 창국의 눈을 찌름으로써 은옥은 복수를 하며, 지흠은 미군 제임스와 동네 불량배에게 활을 쏘고, 유치장에 갇힌 또다른 불량배의 목을 철사로 조름으로써 복수를 합니다. 창국은 자신을 괴롭히던 개눈을 개처럼 목매달아 죽입니다. 그러나 약자는 가해할 때조차 자신이 피해자가 될 뿐입니다. 판자로 만든 총으로 동네 불량배를 쏜 지흠은 오히려 불발탄에 의해 눈에 상처를 입게 되고, 은옥을 완전히 소유하고자 은옥의 가슴에 문신을 새기는 미군 제임스에 대한 은옥의 복수는 자신의 눈을 찌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복수는 복수 자체가 자신에게 멸망을 가져다 줄 뿐입니다. 창국의 집인 빨간 미군 버스 안에서 창국모는 스스로 불을 질러 죽게 되고, 창국을 괴롭히던 개눈도 창국도 모두 죽습니다. 경찰 호송차에 실려가던 지흠은 불탄 버스를 보고 내리려다가 다리에 총을 맞게 되고, 눈을 고쳤던 은옥의 한쪽 눈도 다시 백태가 되어버립니다. 이러한 비극적 결말은 간절히 기다리던 한 장의 편지로 장면화됩니다.
‘수취인 불명’이 되지 않고 너무나 늦게 온 답장은 정작 받아야 할 사람이 불명된 채, 엉뚱한 미군이 수취인이 됩니다. 이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전복되었을 때 역시 비극이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는 우리의 삶에서 피해자도 가해자도 없다는 김기덕의 세계관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입니다.(황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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