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초에 함경도 지방에서 기생으로 활동하였다.
작가는 1605년 함경도 회령으로 부임하는 길이었던 선전관 박계숙(朴繼叔:1569-1646)을 만나 화답하는 시조 2수를 지었다. 화답시 4수 가운데 작가의 시조 2수 〈당우(唐虞)도 친히 본 듯〉과 〈아녀(兒女) 희중사(戱中辭)〉는 15세기 함경도 영흥의 기생 소춘풍(笑春風)의 시조를 변형한 것이다. 이전 시기 기녀의 시조가 널리 퍼져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그것을 전고(典故)로 삼아 변형하는 수법이 나타났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